베트남 사람이어도 괜찮니?
30대 후반이 되면 친구들은 이미 가정을 이루거나 자신의 분야에서 더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저 또한 이런 상황에서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연락이 잘 되지 않는 친구 중 몇몇과 함께 등산을 가곤 합니다. 땀을 빼고 주중에 부족한 운동을 한다는 명분과 함께 운동 후에 식당에 들려서 마음 편하게 음식을 먹는 즐거움 때문입니다.
여느 주말과 같이 친구와 함께 등산을 하려는 순간 업무 이외에는 별로 사용하지 않는 제 폰에 진동이 울렸습니다. 진동을 놓치고 난 후에 확인하니 어머니셨습니다. 여느 아들들처럼 나이가 들은 후에 부모님 전화는 세상에서 내게 가장 따뜻한 사람임을 알면서도 부담스러운 전화입니다. 그래서 확인만 하고 걸음을 옮기려는데 저장만 해둔 이모의 전화가 왔습니다.
이모님은 강원도 면단위에서 생활을 하십니다. 그래서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모님의 조카분의 부인이 베트남에서 20년 넘게 지내신 분이었습니다. 그 분의 좋은 이미지 때문이었는지 이모님은 그분에게 나이찬 저의 결혼 대상자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그날이었습니다.
- 베트남 사람도 괜찮니? 사람은 참 착해
이모님의 말씀이고 어렸을 때 일용직 근무를 하시던 어머니를 대신에서 먹을 것도 보내주시고 주말에는 자주 돌봐주셨기에 별 생각없이 알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내 낯선 문자로 된 이름과 나이가 적힌 문자가 왔습니다. 그리고 조만간에 이모의 조카 며느님께서 영상통화를 통해서 서로를 볼 수 있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스스로 아파트가 없고 버는 돈은 실수령액이 300만원도 넘지 못하기에 그리고 차는 8년 동안이나 탄 낡은 차가 전부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 사람도 괜찮냐는 말에 당시에는 무덤덤한 생각만 들었습니다. 이제와서 고백하면 그 이후에 연락을 하고 만나는 동안에 친구들에게 공개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를 근거로 본다면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는 기쁨도 당혹스러움도 아닌 무덤덤함이었다고는 하지만 심리 저편에서는 베트남 사람을 만난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분명 존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시간이 흘러서 그 당시가 부끄럽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사람의 인품이면 다 된다는 생각으로 변했습니다.
여느 아들들처럼 어머니의 전화는 부담스러웠기에 그리고 누구의 전화인지도 관심없는 친구와 함께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등산을 마친 후에 친구와 식사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이모님과 통화한 사실을 말씀드렸고 "사람은 착하기만 하면 된다."는 어머니의 말과 함께 조만간에 베트남 여성분과 영상 통화를 하기로 약속을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