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생기는 것으로 기인한 변화
지난달에 아내의 친구분께 생일 케이크를 전달하고 그 이후로 만남이 없었습니다. 이전에는 아내의 친구분이 자주 카페를 가거나 식당을 가자고 연락했었지만, 출산 이후 아내와 연락은 하지만 만남 요청은 없는 듯합니다. 지금은 다문화 센터에서 만들었던 물건이 도착해서 저는 이것을 전달하기 위해 친구의 집에 방문하자고 말했습니다. 아내의 말로는 친구네 아기가 너무 어리고 친구와 아기만 있으니 보관했다가 나중에 전해 주자고 합니다. 그리고 친구가 아기 때문에 정신이 없고 무슨 일이 생길까 하여 하루 종일 붙어있다고 합니다.
베트남에서 걸음마가 가능한 아이들을 종종 봤는데 그 아이들의 옷차림은 낡았으며 먹는 음식도 어른들이 먹는 음식을 그대로 줍니다. 이를 보면서 아이 전용 식품이 있고 옷도 외출할 때 더 꾸미는 한국과 차이가 난다고 봅니다. 베트남은 과일이 과자보다 저렴하고 흔해서 그런지 아이들이 초콜릿을 먹고 싶어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이유식이나 과일을 먹었습니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조부모님과 부모님 그리고 동네 놀러 나온 주민들이 베트남 특유의 돌 탁자와 돌 의자에 둘러앉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내의 사소한 말과 잠시 나오면 되겠지라 생각했는데 절대 안 된다고 하며 친구 편을 들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정말 사소하지만 많은 희생과 관심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글로만 봤던 아이를 온 마을이 키운다는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가령 제 아내는 베트남에 있을 때 옆집과 앞집 아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가 선물용으로 사 온 고급 초콜릿을 덥석덥석 아이에게 줍니다. (여담으로 1박스에 2만 원이 하는 고디바 초콜릿과 한국에서 판매하는 일반 초콜릿을 가져간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반응 이야기는 나중에 별도로 다루고자 합니다.) 한국에서 메이커도 없는 옷들의 가격을 보면서 비싸다고 찢어진 잠옷을 바느질해서 입으면서 그런 것을 건네는 것에 대해서는 거리낌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친구들 사이에도 계산할 때 나눠서 내는 더치 페이가 한 문화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렇게 점차 계산적이며 개인적으로 변하는 상황에서 그렇게 경제적 부분을 따지지 않는 것은 자신의 집 앞과 뒤와 옆에 사는 사람들이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평생 그곳에서 산다는 생각이고 하나의 확장된 가족이란 인식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베트남에서라면 누구네 아이든 상관없이 아이 밥이나 간식을 챙겨주고 때로 돌봐줄 사람이 필요할 때 가정 내 다양한 구성원이 돌보거나 집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돌봄이 불가능합니다. 아이에 대한 돌봄이 필요하다면 특별한 시설로 이동을 해야 하고 이용에 있어서 시간적 제약이 있습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 지냈던 아내나 아내의 친구 입장에서 맡길 고았고 없는 아이와 잠시라도 떨어진다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을 해서 아기가 생긴 친구들의 경우 부부였을 때보다 친구들과 모임에 더 시간을 내기 어렵습니다.
이전에는 서운한 감이 들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가 없는 현재 상태에서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며 신체적 변화가 동반됩니다. 모든 이들이 경험하는 사춘기라는 시기에는 신체적 발달이 정신적 발달을 앞선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고 봅니다. 신체적 나이가 더 들어가고 사회적 습관(술, 담배, 야근이나 기타 사회적 활동 전반에 기인)으로 인한 변화도 동반됩니다. 그런데 자신의 정신 상태는 그 변화를 인지하는 것이 느립니다. 아마도 성인이 된 이후에는 인지적 발달을 지속적으로 한다고 해도 사회 속 살아가면서 상황별로 그 지식을 조합하기에 크나큰 변화를 어렸을 때처럼 빠르게 인식하기는 어려운 듯합니다. 이러한 결과가 사회적 용어인 영포티와 같은 말을 만든 듯합니다. 사회적으로 객관적인 나이를 기준으로 구분을 했어도 과거 그 나이대의 사람과 달리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것들을 선택하여 차이가 나는 세대들 말입니다. 이러한 노력을 동반하더라도 신체적인 부분의 노화는 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개인이 지닌 제한된 에너지를 가정 내에 한정해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에너지의 양은 개개인마다 다를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부부 단계에서 친구들과 연락이 자연스럽게 끊어지고 모임에도 참여가 어려워진다고 봅니다. 비교적 그 에너지가 많은 친구들은 부부의 상태에서도 친구들과 모임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는 순간부터는 그 에너지가 온전하게 아이에게 가고 생활의 유지를 위한 생업도 해야 하기에 항상 피곤하고 삶을 영위하기 위한 에너지가 부족해질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타인과 만날 때 자신이 원하는 것만 할 수 없고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는 자연스럽게 신경을 쓰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어렵고 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으니 그 순간부터는 온전하게 가정에만 집중하고 친구들과 만남도 줄어든다고 봅니다.
이것이 올바르다 그렇지 않다고 가치판단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이전에 보지 못했고 이해되지 못한 현상에 대하여 또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문화와 관련하여 과거에는 이런 과정을 거치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이제는 이런 과정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개인적으로 하는 경우도 많아집니다. 그래서 외롭다고 느끼시거나 타인과 교류하겠다는 경우가 늘어나고 이것들이 자연스럽게 미혼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동호회의 발전으로 이어진다고 봅니다. 그러한 동호회에서 서로 교류를 하고 그런 경우가 늘어나니 결혼에 대해서 꺼려하는 문화가 더 확산되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아직 경험을 해보지 못했기에 부부가 되어 친구들 모임에 점점 빠지는 경우와 아이가 생겨서 친구들 모임에 점점 빠지는 경우에 대한 이해를 하기 어려워지고 그로 인한 사회적 관계가 변화된다고 봅니다.
그 관계는 보모님과의 관계만 남아 있다가 추후 형제간의 관계로만 남아 있고 혼자라면 부모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을 때 혼자만이 가족 수준의 유대감을 가질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이 유대 관계가 타인과는 절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제 카드를 꺼내서 씁니다. 하지만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라도 친구가 말도 없이 제 카드로 적은 금액인 커피 한 잔을 사서 마셨을 때 아내가 마시거나 부모님이 마시는 등 가족이 사용했을 때와 느낌은 다를 것입니다. 이는 혼자의 삶을 선택하신 분들이 가족의 유대감은 부모님과의 유대감이 끝났을 때 더 이상 느끼지 못하지 않을까 합니다.
사소하게 물건을 전해 주려고 했다가 아내가 만류하는 상황에서 새롭게 형성된 아내 친구와 그 아이의 유대감 그리고 저와 제 아내의 관계, 이들로 기인한 친구들과 자주 만나지 못하는 상황. 과거 제가 친구들에게 느꼈던 감성에 대하여 짧게 정리해 봅니다. 시간이 흐르면 또 생각이 변하겠지만 지금은 아이가 태어나고 부부의 연을 맺는 것은 가족의 유대감이 이어지는 것이고... 혼인 관계가 없을 경우는 가족의 유대감을 느낄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