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지 않지만 소소하게 즐거운 이유
행복이라고 적으려고 했다가 행복은 많은 철학자 분들도 언급하기에 그 주제를 다루기에는 제가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소소한 즐거움이라 바꿨습니다.
보통 문제의 원인은 개인의 내면에서 오기 마련입니다.
제가 만약 한국인 여성과 결혼했다면 사회 문화적으로 학습한 내용 때문에 부유한 가정들 특히 대기업에서 일하는 소득이 상위이며 소수에 해당하는 가정들의 삶을 기준으로 두었을 듯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심리적 위축 속에서 살아갔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일하는 곳에서 여성분들은 남편분들의 직업이 매우 좋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한국의 문화를 벗어나 국제 결혼을 한 지금도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부유한 국제 결혼 커플과 교류하거나 소식을 들을 때 제 형편으로는 하지 못하거나 부담스러운 수준이기에 흠칫흠칫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란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좋은 조건이 아니기에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이면에는 아내를 고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나라에서의 삶과 비교할 때 한국 기준으로 보면 조금 부족하더라도 베트남 기준으로 보면 물질적 풍요면에서 부족하지는 않다는 심리적 위안이 함께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부유하지 않지만 소소하게 즐기면서 마음이 평온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와 별개로 문화 차이로 인하여 가족을 중시하는 아내와 그런 경향성에 기인한 유대감으로 인한 심리적 위안도 있습니다.(단, 베트남 여성분들 중 가족 사당을 두고 저녁 식사 시간에 모이는 등 현재 사라지는 베트남의 전통문화에 대하여 가정 내 관습처럼 이어지는 경우에 한정합니다. 그 외의 경우는 분명 문제를 호소하는 분들의 유튜브 영상이 존재하듯 분명 부정적인 부분도 존재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한국 부부들의 사례에 적용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성분이 바가지를 긁는 것도 아닌데 남성분이 괴로워하는 경우,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경제적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오는 괴로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부유한 국제결혼 가정의 씀씀이 소식을 들었을 때 제가 그것을 실현하지 못하거나 부담감으로 실현할 수 있어도 주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를 들어 제 아내가 한국 문화에 익숙하다면 저처럼 제품을 구매할 때 메이커를 선호할 것입니다. 제 경우 운동복은 메이커가 아닌 것을 구입하고 마구 입고 다닙니다. 하지만 하얀색 운동화를 구입했다면 초기에는 조심하며 신고 다닙니다. 메이커를 사는 것은 이미 상향 평준화된 품질을 고려할 때 타인의 시선을 고려한 구매라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이런 저의 소비와 다르게 제 아내가 사는 나라는 공산국가이고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부가 허락됩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메이커보다 제품의 질이란 본질을 찾아 사는 삶에 익숙합니다. 그래서 제 아내는 저희 어머니가 사주신 18만 원짜리 바지는 본가에 갈 때만 입습니다. 그 외의 경우에는 베트남에서 사 온 옷이나 한국에서 운동용으로 쓰라고 구입한 2만 원 내외의 옷이나 외출할 때 입으라는 5만 원 내외의 나이키 옷이나 상관없이 입고 다닙니다. 주변에 운동할 때는 허름한 옷을 입고 한국어 수업을 들으러 갈 때는 나이키나 아디다스 등(제가 여성복 브랜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유니섹스 제품을 주로 구매합니다.)을 입으라고 말하지만 아내에게는 저희 어머니가 본인은 사지 않더라도 예쁜 며느리라며 매장에서 사주신 고가의 바지를 제외하면 나머지 옷들은 그저 옷으로 입을 뿐입니다. (참고. 바지는 세일을 해서 18만 원인 조거 팬츠였습니다. 매장이 운영된다는 것은 이런 매장에서 제품을 보고 구매하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인데 돈을 잘 버시는 분의 삶의 양상은 서민들과 매우 크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울 옷은 비싼 옷을 사기도 하지만 18만 원이면 제 기준으로는 상의와 하의, 속옷, 양말까지 살 수 있는 가격입니다. 단, 신발 가격은 제외입니다.)
하지만 한국 문화에서 생각해 본다면 복잡해 집니다. 흔히 활용되는 이야기가 여성의 가방 이야기입니다. 옷에서는 메이커를 숨기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티가 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메이커가 보이는 옷을 입지 않는 추세이기에 그런 듯합니다. 하지만 가방만큼은 수백에서 수천만 원인데 그 디자인 자체가 가방의 가격을 추측할 수 있는 기준점이 됩니다. 마크를 표면에 제시해서 옷이 라벨을 가리는 것과 다르게 가방은 라벨 자체를 디자인으로 활용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부녀들의 모임을 할 때 옷은 비싸지 않고 라벨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가방은 해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검소한 아내의 이야기에는 꼭 친구들이 가방하나 사야 하지 않냐는 이야기가 등장하고 고생한 아내에게 선물을 하려는 남편의 고민은 가방의 가격 이야기가 꼭 들어가는 듯합니다. 이런 문화 아래에서 독립적 성향을 가지는 부부라면 상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사호와 영향을 주고받는 평범한 부부라면 이 부분에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소비에 대한 부족한 자원을 다른 곳에서 보완해야 하고 만약 이런 합의가 없이 심리적 만족을 위해 구입했을 경우 가정 내 불화로 이어질 것입니다.
한국 문화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있기에 현재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듯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카페를 갑니다. 한달에 두세 번 정도는 1인분에 2만 원 정도로 외식을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두 마리 치킨을 네 가족이 나눠 먹는 것이 외식을 대신하는 것들 중 하나인데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이런 소비에 대해서 이해를 못 합니다. 아마도 친구들의 수입이 많기에 친구들 기준에서 외식이라고 한다면 소고기나 장어, 초밥 등을 먹고 20만 원 정도를 써야 특별한 식사를 했다고 보는 듯합니다. 베트남에서는 스타벅스가 식사보다 비싼 음료입니다. 베트남에 갔을 때 호기심에 스타벅스를 가니 한국과 가격에서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베트남 분들에게는 한국보다 3배 정도 비싼 가격이겠는데 이를 구입을 하십니다. 이를 보면 한국에서 편하게 가는 커피점임에도 아내는 베트남 지인들과 연락을 하는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립니다.
이를 생각하면 스타벅스가 베트남에서 비싸기에 베트남에 있는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좋은 사례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마치 한국에서는 고가의 식당 사진을 올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현재는 이런 문화적 차이에 기인하여 경제적 자유와 심리적 갑자기 없어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다만, 아내가 한국 문화에 익숙해진다면 한국의 경제 수준에 맞춰서 만족을 위해 소비하고 요구하는 것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 경우는 저 또한 게시물에서 아내의 소비에 대해 토로하고 얼마짜리 가방을 사야 심리적 만족과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 사이 균형을 맞출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시물과 같은 걱정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현재 소소한 즐거움은 아직은 그런 문화적 영향을 받지 않아서 작은 것에도 행복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SNS를 즐겨하는 만큼 베트남에 있는 친구들의 피드백이 아니라 한국에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영향과 피드백을 원하게 될 경우 아마도 지금과 다른 소비 패턴이 생성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일단은 작은 것에도 행복해하는 지금의 상황을 감사히 생각하며 누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