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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정 용어 속에 공통으로 포함된 식사 준비에 대하여

국제결혼과정 기록/결혼 생활 이야기

by 국결임 2024. 11. 1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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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om/shorts/GKOr26f6Brs?si=SX9gDY-NGkAzBnyE


결혼에 대하여 불행함의 척도로 삼는 것은 다양하게 있겠지만 인터넷 게시물의 익명성과 편리한 접근성을 근거로 한다면 대부분 식사 준비 사례가 많습니다. 제가 자취를 할 때 제 옆에 살던 신혼부부... 다세대 주택에서 시작함을 보면 일방적으로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부부의 경우와 비교할 때 서로에 대해 부족해도 함께 살아가는 것에 합의했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도 집 앞에 택배가 도착하면 즉석밥이나 레토르트 국 그리고 냉동식품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자취하는 것이나 부부가 되어 함께 사는 것이나 별로 차이가 없구나란 생각을 했었습니다.
부부가 된 것에 대해 설거지를 당한 것에 비유한 퐁퐁남에 이어 결혼 생활을 유지하다가 이혼으로 재산을 요구하는 도축론까지 극단적인 상황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회에서 생성된 용어도 있습니다. 그 상황에 대하여 눈을 돌리기보다는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그 문제를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고민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모든 상황에서 언급된 느 사항... 일을 하고 왔는데 왜 식사를 준비해 주지 않는가에 대한 개인의 생각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겨우 한 사람의 이야기지만 유부남이 된 상황이며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의 결혼생활 문화에서 조금 거리를 둔 입장이기에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위에  제시한 영상에서는 생물학적 성에 대한 차이가 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성과 남성이 사회적 학습으로 형성되었다는 의견에 반박 자료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직장에서 받는  의무 교육에서는 여성다움 남성다움이 없이 '나 다움'만 제시하고 있습니다.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위원회까지 만들어 교육으로 생물학적 성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에 대하여 미국 대선에서는 트럼프가 당선된 것이 그동안 올바름이라고 교육하던 것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반론이란 해석도 있습니다. 말이 길었지만 끊임없이 증명할 수 없는 이런 분석에 대해서 저는 우리의 상식이 사회적 합의로 이뤄지기에 미국 대선의 결과나 앞서 제시한 실험 영상을 근거로 할 때, 태생적 성에 따른 차이가 있을 것이란 점입니다.
추가로 도서관에서 이뤄지는 철학 특강에서 책을 읽을 때 전자책보다 종이책이 더 선호되는 이유는 원시 시대부터 이어져온 직감적 경향성(종이를 만지고 넘기는 질감 등)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여성의 요리에 대한 경향성이 많도록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여성의 요리에 대한 관심과 요리를 하고자 하는 욕구에 대한 것은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일부 그러한 일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소수의 여성분들이 개개인 여성분들의 선택인데 그것을 소수 여성분들께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시기에 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처럼 되고 양성평등의 교육까지 오며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는 것은 부정적인 일이라는 인식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가부장적이라고 하는 아버지 세대에서도 어머니가 요리를 하셨을 때 자식이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닌 이상 어머니에 대해서 감사함과 존경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나이를 먹어서도 어떤 일이 있었을 때 '아빠'라고 하지 않고 '엄마'라고 급격한 목소리를 낼 때 그동안의 심층적 심리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말이 길어서 다시 정리하자면 여성의 요리에 대한 경향성은 생물학적 선호 경향성이 있으며 요리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성이 집안 살림만 할 경우 요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런 태생적 경향성에 대한 인식이 있고 그 인식에 대한 반발심에 익명성을 바탕으로 토로하는 인터넷 게시물 속 잦은 화소로 등장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앞서 먼저 말했던 것처럼 문화 때문으로 보입니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남성은 원시 시대에는 사냥을 하고 여성은 가정에서 가족을 돌봤습니다. 산업혁명 시대에도 그러했고 이후에는 남성의 임금만으로 생활할 수 없기에 여성이 사회 현장으로 나서면서 가사에 대한 나눔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러한 문화적인 부분은 오랜 시간 사회적 합의로 형성된다고 봅니다. 가깝게 생각해도 우리의 어머님들이 가족들을 위해서 그렇게 요리를 하셨습니다. 이것을 본 그 자녀들은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란 존재에 대한 이미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아내가 그 부분에서 그동안 정립되었던 어머니의 모습과 차이가 생기기에 그 거리감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결혼 생활 중 조롱하는 말인 퐁퐁남이나 도축론과 같은 부정적 요소에 꼭 집에 왔을 때 식사를 준비해 주지 않은 것이 반영된 듯합니다. 아마도 다수의 남성들이 자취의 경험이 있기에 자취를 해보지 않았던 여성과 비교할 때 요리 실력이나 재료를 선택하는 능력 등 요리에 필요한 다양한 요소들이 더욱 뛰어날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내가 퇴근 후에 식사를 준비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자신이 바라본 가정이란 문화에 대한 향수의 반영이 아닐까 합니다.
추가로 이것이 문화라고 생각하는 것은 제 아내의 경우 베트남에서 대기업에서 일을 했었음에도(대기업이라고 해도 베트남 기업이라 월급이 한국의 1/3 수준, 그래도 은행 다니던 사람이 지원해서 들어오기도 합니다. 단, 베트남 은행원의 사회적 위치가 어떤지는 모름을 밝혀둡니다. 한국의 은행원의 사회적 위치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함께 생활했을 때도 저는 자연스럽게 햇반과 냉동식품을 데워 먹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부터 제 아내는 요리를 해서 저의 퇴근 시간에 맞춰 식사를 준비해 둡니다.
이것은 아마도 아직 한국과 같은 남녀평등에 대한 인식이 없기에 그 문화의 영향으로 아내가 준비를 하는 듯합니다. 지금까지도 잠이 많아서 한국어 교실을 나가지 않는 날이면 오전 10시까지 잠을 자지만 신기하게도 저녁 식사는 꼭 준비해 줍니다.

마지막으로 문화가 아니라 개인대 개인으로 봤을 때, 배려의 작용이기에 저녁식사 준비 이야기가 꼭 퐁퐁남이나 도축론처럼 부정적인 언급을 할 때 등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하소연한 이야기 중 치킨이나 족발을 먹었을 때 먹기 전에 미리 덜어놓고 줬으면 좋았을 것인데 남은 것을 줘서 양념에 밥을 비벼 먹거나 흐트러진 족발은 그렇다 쳐도 다 불어 터진 막국수를 보면서 슬펐다는 유형의 게시물들이 종종 보입니다. 혹자는 이것이 조작한 것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조작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서라도 왜 많은 사람들이 그런 글에 공감을 했는지 존재하는 부분만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런 경우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내는 부분은 아마도 힘들게 일을 하고 왔는데 집에서 그에 대한 공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음식을 먼저 먹은 것을 문제 삼을 수 있음에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은 음식을 미리 좀 덜어줬으면 하는 하소연입니다. 음식을 먼저 덜어줬으면 하는 것은 사소하지만 그 음식을 먹기 전에 자신을 생각해 줬음의 반영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전업 주부에게 저녁 식사를 바라는 것은 개인대 개인 더 나아가 다른 개인들보다 더 긴밀한 사이라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법적으로 인정받은 상대에게 배려의 대상이 되기 바라는 희망의 반영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한 배려를 받고 사회생활에 대해 공감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그것이 매번 무시가 되니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해 부탁을 했을 때 거절하면 기분이 나쁘듯이 부정적인 마음이 쌓여 결국은 터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단, 제 경우 아직 아이는 없기에 육아를 하는 부부의 경우에 대해서는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왜 사회적으로 부부 관계를 부정적으로 보는 용어에 왜 저녁 식사 준비 이야기가 항상 포함되는지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적어 보았습니다. 제 경우는 아내가 늦잠을 자지만 저녁 식사는 꼭 준비해 주고 한국의 문화와 다른 베트남 문화 속에서 성장해 온 사람이기에 이런 한국 부부의 현상에 대해서는 다소 거리감을 두고 바라보고 있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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