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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먹는 것과 쥐를 먹는 것.

국제결혼과정 기록/결혼 생활 이야기

by 국결임 2024. 11. 20.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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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고기를 살면서 한 번도 먹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어렸을 때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반겨주던 어미 개와 강아지들에 대한 경험이 개를 식용으로 보기보다는 친구로 인식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개고기를 타인이 먹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습니다.(근거를 들어 해당 행위에 대하여 의견을 제시하는 일) 왜냐하면 오래전부터 이어져오던 한국의 문화 중 하나이고 특정 문화에 대하여 별다른 이유 없이 억제하는 것은 폭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제시하자면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애견인들이 주는 피해만큼의 피해를 제게 주지 않습니다. (인간이 문제를 접근할 때 개인적 관련성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기본적인 접근법이라 봅니다.) 또한 개가 식용으로 키워지는 환경이 좋지 않다고 하지만 이는 육식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가축에게 해당이 됩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는 축사가 많은데 지나가면서 냄새가 나지 않는 축사는 거의 없고 대부분은 지나가면 분비물을 제대로 치우지 않고 환기도 잘 되지 않아 냄새가 심하게 납니다. 이는 뉴스에서 보던 개들이 사육되는 환경과 별반 차이나지 않습니다. 또한 닭들이 사육되는 환경은 개가 사육되는 공간과 비교할 때 움직일 공간이 더 없어 닭은은 개들처럼 우리 않에서 빙빙 돌 공간도 없습니다. 이런 육식을 위해 키워지는 동물들... 결국 그 끝은 죽음이고 개고기가 식용으로 키워지는 상황에 대하여 문제를 삼는다면 개와 돼지 그리고 소가 도축되는 것처럼 도축 환경을 갖추면 될 일입니다. 그리고 많은 소비가 있어서 이뤄진 다른 가축들의 상황을 보면 과거에 마을에서 도축하던 것을 공장식으로 도축하는 차이만 생겼을 뿐입니다. 본질적으로는 인간이 채식만으로는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없고 필요한 영양소를 받을 수 없어서 육식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지고 그 끝에는 육식을 위해 죽는 동물들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개와 관련한 법도 만들어지면서 개 식용에 대하여 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편 베트남에서도 개를 먹습니다. 개와 고양이를 먹는데 이것은 과거 우리나라도 그러했기에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최근에 아내가 보여준 장인어른 댁 영상 통화 중에는 쥐를 구워서 먹는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제 아내의 경우 부화 직전의 달걀과 오리알은 먹지만 쥐와 개, 고양이는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쩌면 제게 좋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예측 가능한 것은 베트남 또한 개와 고양이를 먹는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흥미로운 점은 '쥐'를 먹는다는 것인데 이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쥐를 먹는다는 것 그리고 구운 쥐를 직접 영상 통화로 보여주니 처음에는 '흠칫' 놀랐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는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육식이란 점에서 어느 동물을 먹던 그것은 동일합니다. 다음으로는 개 식용에 대하여 문제를 삼는 환경을 적용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쌀농사가 많은 베트남에서 들쥐는 도시의 쥐와 다르게 과일과 곡식을 먹습니다. 이는 우리가 사료를 먹여 키우는 개와 돼지보다도 좋은 환경에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곡식을 훔쳐먹는 쥐를 잡아먹는 것은 키우는 환경 면에서는 깨끗합니다. 

 한편 쥐를 먹는 다는 것은 곡식을 약탈해 가는 동물에 대한 분노가 반영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인어른 세대에서는 추수를 하면서 잡은 쥐를 구워 먹는 문화가 있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내의 세대에서는 그러한 문화가 부모님 세대는 그렇고 자기 세대는 하지 않는다는 정도입니다. 이는 마치 한국에서 개고기에 대하여 맛과 영양적 이유로 찾아 먹는 사람들과 먹지 않는 세대의 구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개를 먹는 것이나 쥐를 먹는 것이나 소와 돼지 그리고 닭은 먹는 것이나 본질적인 육식을 통해 영양분을 섭취하고 삶을 이어간다는 점에서는 동일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반영해서 반대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라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과 같은 가자지구나 우크라이나처럼 전쟁이 난 상황에서는 인간들이 평소에 향유하는 문명이라는 것이 빛을 발하지 못할 것입니다. 귀금속도 힘을 쓰지 못할 극단적 상황에처한다면 금반지보다는 물 한 병이 더 귀할 것입니다. 이는 과거 역사 속에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비롯된 인플레이션이 그 증거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인간은 문명이란 이름으로 치장하던 장식을 내려놓고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며 그 상황에서 쥐가 있다면 쥐를 잡아먹을 것입니다.

이때 쥐는 과거에나 어려운 상황에 처한 당사자의 현재 상황에서나 모두 동일하게 '쥐'로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에 쥐를 무시했다고 친다면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는 단백질을 섭취하고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한 자원으로 의미가 변할 것입니다. 

 

개와 쥐를 먹는 것도 이와 동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개를 먹지 않아도 개를 먹는 사람의 권리를 무시하지 않고 장인 어른이 추수가 끝나고 논에서 사는 들쥐를 구워 드시는 모습을 보여줘도 그런 문화가 있고 존재를 인정하고 넘어갑니다. 개인적으로는 법으로 개 식용을 막고 사회적 비용을 만드는 상황 속에서 세계 시민이니 세계화이니 강조하는 지금 상황에서 시대를 역행하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을 바라보지 않았기에 개를 먹는 일이든 쥐를 먹는 일이든 그 이면을 살필 생각 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구운 쥐는 곡식을 먹어 살이 올랐는지 표면에는 기름이 반질반질하며 메추라기 정도로 손바닥 크기 만한 모습이었습니다. 머리는 자리고 돼지를 손질하듯이 몸통과 다리만 있어서 펼쳐쳐진 상태로 구워졌기에 기회가 된다면 경험 삼아 한 조각 정도만 먹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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